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건축에 140년 걸린 이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바르셀로나에 랜드마크이자 설계를 맡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44년을 건축에 매진했지만 죽기 전까지 완공을 못한 대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이 유명한 이유는 140년이 넘도록 건축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와 건축 설계가 현재 기술로도 매우 복잡하고 혁신적이었던 이유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1. 1882년 3월 19일 축공
  2. 1883년 가우디가 
  3. 1926년 가우디 사망
  4. 2019년 건축허가 승인
  5. 2026년 완공 목표
  6. 한국어 명칭 :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
    • 성가정 :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성모 마리아 남편) – 성스러운 가족이란 뜻
  7. 첨탑 높이 172.5m 예정
    • 세계 최고높이의 성당으로 기록 될 예정

1882년 건축을 시작했지만 정작 2016년에야 건축허가 승인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2019년에야 허가 승인이 나왔다고 합니다. 세계 최장기간, 최대규모의 무허가 건축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죠.

성당 구조

첨탑과 내부 구조

  • 첨탑은 총 18개로 12개는 예수의 12제자를 뜻 하며 5개는 4대복음 전도자들과 성모마리아를 중앙에 가장 높은 첨탑은 예수를 뜻 한다고 합니다. 
  • 중세시대 고딕 건축물 형태이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했던 가우디는 옥수수를 세워놓은 것을 본떠 첨탑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 내부의 기둥은 나무를 표현하였고 천장 조명은 꽃과 잎 모양에 스테인드 글라스를 사용하여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방문객들은 숲 속에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죠. 가우디는 빛에 신이 함께한다고 믿어서 인공조명 보다 자연광을 채택하였다고 합니다.

파사드 

파사드는 건물에 출입문을 뜻 하며 동쪽, 남쪽, 서쪽 세 방향에 있습니다.

  • 동쪽 : 탄생에 파사드에는 3개의 문이 있고 각 출입문은 희망, 자비, 신앙을 상징합니다. 탄생에 파사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년기를 뜻 합니다.
  • 남쪽 : 영광의 파사드라 불리며 성당에 정문이며 최후의 심판, 지옥, 영생을 뜻 합니다.
  • 서쪽 : 수난의 파사드이며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 파사드는 동쪽 일출, 남쪽은 정오, 서쪽은 일몰을 뜻 하는데.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예수의 일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 성당 내부는 오전, 정오, 오후 시간별 대로 달라지는 조명 연출을 볼 수 있어, 신비함과 가우디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지하박물관

  • 1882년 축공 당시 수석 건축가는 교구 건축가였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빌라르’ 였는데, 초기 설계는 네오 고딕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기술고문과의 불화 문제로 1883년 수석 건축가를 하차하게 되었고 감독 지위로 참여했던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를 이어 받습니다.
  • 가우디는 기존 방식에 설계였던 네오 고딕 양식에서 전통적인 고딕 양식으로 재설계를 하였고 일부 지하 공간은 전임 수석 건축가의 설계를 반영하게 되어 지하와 지상과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 지하의 구조는 경당과 가우디의 무덤, 그리고 설계와 관련된 가우디의 유산등이 전시되어 잇습니다.

가우디의 죽음

1926년 안토니 가우디가 마차에 치여 사망한 비화가 있습니다. 성당 미사를 마치고 마차와 충돌 후 바닥에 쓰러진 가우디의 차림새가 길거리 부랑인처럼 볼품없어서 행인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우디를 외면하고 지나쳤다고 하죠.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가우디를 몰라본 의사가 간단한 치료만 해줬는데, 가우디 본인이 가난한 자들처럼 죽겠다며 제대로 된 치료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사망 한 이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본인이 40년 간 모든 것을 바친 성당 지하에 묻히게 됩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건축에 140년 걸린 이유

  • 1882년 축공 당시 스페인 정부나 가톨릭 재단에서 건축비용을 낸 것이 아니라 종교서적 출판사 사장인 ‘주제프 마리아 보카베야’ 가 소정에 재산과 후원자들의 모금으로 시작을 한 터라 소수의 건축기술자들만 참여했습니다. 공정은 당연히 느리지만 소수에 인원이 참여한 결과 가우디의 건축 의도가 잘 반영되어 정교하게 건축이 진행되었습니다.
  • 1926년 동쪽 탄생에 파사드 일부만 건설되었지만 안토니 가우디가 마차에 치여 사망하면서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동쪽 탄생에 파사드가 일부 훼손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 부터 다시 공사가 재개되었지만 복잡하고 불안전한 건축도면을 해석하는 문제로 다시 공사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다른 이유로는 공사 초기부터 모금만으로 건축비용을 충당하던 터였던지라 소수에 인원으로만는 만족할 만한 공정률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 1950년 서쪽 수난에 파사드가 착공을 시작했고 1976년 ‘호세 마리아 수비야치’ 수석 건축가에 의해서 서쪽 수난에 파사드가 완성되었습니다.
  • 2002년이 되어서야 남쪽 영광의 파사드가 착공되었고 현재는 중앙 첨탑도 같이 건축하고 있어 2026년 가우디 사망 100주년 시점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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